- 임명섭 충남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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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명섭 충남일보 주필 |
불만 붙었다 하면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대형 산불이 일상이 되고 있다. 과거 몇 시간이면 끌 수 있던 산불은 이제 수일, 길게는 일주일 넘도록 일대를 휩쓸며 피해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기후 변화가 키워낸 화마는 더 이상 봄철 계절적 재난이 아닌 일상 속 연중 재난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최악의 '산불 사태'로 인한 인명피해가 75명으로 산불 사태로 목숨을 잃거나 다쳐 사상자도 30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대형 산불로 산림 4만 8000㏊가 잿더미가 됐다. 설상가상 앞으로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산불이 더 자주 발생하며 파괴력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니 우려스럽다.
경북 산불은 일주일 만에 모두 진화돼 천만다행이다. 지난 21일 발생한 산청 산불은 9일간 산림을 태워 피해 영향 구역은 4만 8238㏊로 서울 여의도(290㏊)의 166배 달하는 규모다. 피해 규모도 컸기에 참담하다. 시설물 피해도 계속 늘어 주택 2996채, 농업시설 1142곳 등 모두 4801곳에서 산불 피해가 난 것으로 파악됐다.
산불 확산에 따라 이재민은 4193세대·6885명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산불 진화와 이재민 지원이 마무리되는 대로 산불 대응 시스템을 다시 짜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진화 시스템은 달라진 게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장비와 인력 확충이 우선이다.
이번 산불 진화 과정에서 추락한 헬기는 30년 된 노후 기종이었고, 조종사도 고령자였다. 장비와 인력의 노후화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산불 진화의 핵심은 헬기인데 이번에 동원된 헬기 대부분은 담수량 1000~2700ℓ 규모의 중소형 기종이다.
그러기에 작은 헬기로는 역부족이다. 초동진화용 2만~3만ℓ이상의 대형 헬기를 확충해야 한다. 또 지금처럼 지역 고령층을 임시로 고용한 산불진화대원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 산불특수진화대원을 늘리고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
자연재해는 피할 수 없는 것인데 시스템이 달라져야 한다. 언제까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반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를 가져온 영남 산불로 재난대응용 예산 책임론도 여의도에 강하게 휘몰아쳤다.
한 쪽은 재난대응용 예산이 있는데 정부가 쓰지 않은 것이라고, 다른 한쪽은 반대편에 있는 이들이 예산을 깎아서 쓰지 못한 것이라고 각각 외치고 있다. 영남을 휩쓴 이번 산불과 같은 재난을 효율적으로 이겨내려면 관련 예산 마련은 필수적이다.
선제적 예방은 물론, 사안이 일어난 후의 사후 대응까지 꼼꼼히 살펴보는 일 또한 중요하다. 화재가 여전히 국민들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인데, 네 잘못이 크니, 네 잘못이 더 크니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화재에 집을 잃은 분들, 가족을 잃은 분들 앞에 불을 끌 예산을 누가 줄였는지가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그래서 정치권도 화재 늑장 대응으로 비판을 자초했다. 정치권이 책임을 지고 어떻게든 이를 채워보기는커녕 한 쪽은 그를 지키겠다고, 다른 한쪽은 그를 쫓아내겠다고 하느라 민생은 뒤로 미룬 것이다. 지금 화마가 휩쓸고 간 물질적, 정신적 상처를 치료하는 데는 이보다 훨씬 긴 시간, 그리고 예산이 필요하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사고 수습과 이재민 지원에 나설 정부가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내는 일이다. 경북 북부 대형 산불 대재앙이 끝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목숨을 걸고 화마에 맞섰던 모든 현장 인력에게 큰 경의를 표한다.
이제 피해 지역을 복구할 지원 대책, 유사 사태를 막을 총체적 재발 방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귀중한 문화재 소실도 적지 않았다. 어느 면으로 보나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다. 이런 대형 산불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건조한 대기와 빠른 바람, 험한 지형 등 불리한 조건에서도 희생과 노고를 아끼지 않은 현장 근무자들 덕분이다.
진화대원들은 하루 18시간 이상 뜨거운 화선 앞에서 불에 맞서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전국에서 모인 헬기 조종사들도 쉴 틈 없이 저고도로 날며 위험한 작업을 감수했다. 몸을 아끼지 않고 이웃 대피를 위해 불속을 뛰어다닌 주민, 진화와 사후 수습에 여념 없었던 공무원, 매캐한 공기를 마시며 이재민과 피해자들을 도운 자원봉사자들의 수고도 잊어선 안 된다.
이번 산불은 인간의 힘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 '자연의 재해'였지만, 동시에 주의와 준비가 철저했더라면 피할 수도 있었던 '인간의 재해'이기도 했다. 이런 재앙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산불이 얼마나 큰 재난인지를 확인한 만큼, 이 대책을 실현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아껴선 안 된다.
이선민 기자 cmn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