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명섭 충남일보 주필
▲ 임명섭 충남일보 주필 |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 중 하나다. 정부는 아이 좀 낳으라고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200여 조 원을 풀었지만 출산율은 오르지 않고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웬일일까? 무슨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는 걸까?
양육비 걱정에? 아이 키울 공간이나 사람이 없어서? 아니면 시대적 자연현상이라서? 이런 의문들은 피상적인 것일 뿐 정답을 이끌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 무엇이 젊은 사람들에게 결혼을 기피하고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을 앗아간 것일까?
저출산 문제만큼 대한민국에서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는 없다. 정부나 정치권에서도 저출산 해법을 제시하고 나섰지만 그 내용이 구태의연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새로운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고 기존의 대책들을 좀 더 부풀려 내놓은 정도에 불과하다.
젊은이들에게 결혼과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면 거의 이구동성으로 비용 부담을 이야기한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개인적 경험에 따라 다양하다. 그리고 주로 출산 주체로서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적 상황, 즉 독박 육아와 경력단절에서 결혼과 저출산 요인을 불러들이고 있다.
각종 설문조사나 여론의 흐름은 압도적으로 '비용'에 쏠리는 경향이 많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잘 살고 있다. 빈부격차, 중산층의 몰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결혼하지 못하고 아이를 키울 돈이 없을 정도로 젊은이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지 않다.
우리 청년들은 다른 어느 국가에 비해 물질적으로 잘 사는 국가가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에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6000달러를 넘어 일본을 앞지르기도 했다. 인구 5000만 명 이상 규모 국가 중 전 세계에서 6위로 잘 사는 나라로 알려졌다.
이른바 주요 7개국(G7)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혼인율 하락을 겪으며 늪에 빠진 근본적인 원인은 '젠더(남녀 간의 대등한 관계, 평등에 있어서도 모든 사회적인 동등함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의미의 함축) 갈등이라는 한 외신의 분석이 있다.
미국 시사주간 '디 애틀랜틱'에 실린 "한국인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아이를 갖지 않는 진짜 이유"라는 칼럼에서 언론인 애나 루이즈 서스만은 "한국에서는 인종이나 나이, 이민 상태보다는 성별이 가장 날카로운 사회적 단층"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주로 "주거비와 양육비용 등이 육아 문제와 결혼·출산의 장애물로 꼽힌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더 기본적 역학관계인 여성과 남성 사이 관계 악화, 즉 한국 언론이 '젠더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라고 꼬집었다.
서스만은 먼저 출산율 급락 현상이 한국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도 많은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사회적 성 역할 변화는 지체되면서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분노가 쌓였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이 비연애·비성관계·비혼·비출산, 이른바 '4비'를 추구하며 독신 생활을 선택하고 있는 이유를 지적했다.
남성 역시 노동시장 경쟁에서 분노를 키워주고 있다. 자신들이 군 복무를 하는 18개월에서 2년 동안 노동시장에 먼저 진입한 여성이 유리한 여건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도 그렇다. 때문에 즉 '젠더 전쟁'을 간과할 수 없다.
사회적 성 역할 변화가 지체되면서 결국 결혼·출산으로 경력단절을 겪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보다 집값이 더 비싸고 물가가 높은 나라들이 많지만, 이들의 출산율은 우리처럼 낮지는 않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첫째 이유는 노동시장 구조다. 우리의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자영업자의 삼분할 구도로 고착화돼 있다. 장래 정규직으로 이동할 희망을 갖지 못하는 비정규직에게 결혼시장은 또 하나의 큰 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
임금근로 시장에서 밀려난 자영업자도 매한가지다. 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는 걷어차 놓고 오로지 시혜적 차원의 주거비와 양육비 지원으로 무마하려는 미봉적 대책은 애초부터 정책 한계가 분명하다. 두 번째 이유는 심각한 젠더 갈등이다.
젠더 갈등은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진다. 남존여비 사고와 남아 선호 문화가 잔존하는 환경에서 자란 마지막 세대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양성평등의 정당함을 귀가 따갑도록 교육받고 성장한 세대들이다. 그런 점에서 젠더 갈등이 두드러지는 현상은 당연하다.
젠더 갈등은 결혼 기피와 출산율 추락과 결코 우연은 아니다. 낮은 결혼율과 출산율은 노동시장의 장벽과 젠더 갈등이 상승 작용으로 젊은 세대를 짓누른 결과이다. 그래서 결혼 기피, 저출산 문제는 단순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언급대로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 다른 차원의 접근은 노동시장 개혁이고 젠더 갈등 해소다. 개혁은 어렵고 힘든 고난도의 작업이지만, 돈은 적게 들고 효과는 큰 상책(上策)의 해법이 담겨 있어 개혁만이 결혼 기피와 저출산을 막을 수 있는 길인지 모른다.
이선민 기자 cmn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