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법혜 스님(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 김법혜 스님(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
염량세태(炎凉世態)는 말 그대로 뜨거웠다가 차가워지는 세태라는 뜻이다. '세력이 있을 때는 아첨하며 따르지만, 세력이 없어지면 냉정하게 떠나는 세상인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것'으로, 권세(權勢)가 있을 때는 아첨하여 좇고 권세가 없어지면 나 몰라라 푸대접하는 세속의 인심(人心)을 일컫는 말이다.
이 말은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권력가 맹상군의 일화에서 유래됐다. 맹상군은 제나라 위왕의 아들로, 정승을 지냈으며 천하의 부귀와 영화를 한 몸에 지니고 누렸던 인물이다.
당시 맹상군은 권력을 잡고 있었지만 인덕도 있어 재주 있는 사람들과 뜻을 이루고자 하는 선비들을 위해 집을 마련해 주고 식객들도 받아들여 수천여 명의 숙식을 제공해 주는 등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었다.
맹상군의 세력과 위세가 날로 늘어나고 거침없이 커져가자 불안감을 느낀 제나라 왕은 맹상군의 지위를 파직시키고 나라 밖으로 추방했다. 그러자 그에게 의탁하며 도움을 받던 수많은 식객들도 하나 둘 뿔뿔이 흩어지고 결국은 모두 맹상군 곁을 떠나버렸다.
세월이 흘러 자신의 행동을 뉘우친 제나라 왕은 맹상군을 다시 불러 지위를 복권시키게 되자 뿔뿔이 흩어졌던 식객들이 다시 찾아들기 시작했다. 맹상군은 이런 상황에 몹시 당황하며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염치(廉恥)로 다시 나에게 오는가"하며 쫓아 버리려 했다.
그러자 참모가 "사람들이 아침에 시장에 모이고 저녁이 되면 시장을 떠나는 이유는 아침시장을 좋아하고 저녁시장은 싫어서가 아니라 저녁시간에는 이미 물건이 모두 팔리고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주군이 권세를 잃자 의지하고 따르던 식객들은 모두 떠났으나 후에 권세를 되찾게 되자 다시 모여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군상(群像)들의 모습이다. 결국 맹상군도 마음은 아프고 쓰리지만 그들을 다시 받아들인다.
우리 속담에 이러한 모습들을 풍자한 말로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는 뜻으로 부간부념통(附肝附念通)이란 말이 있다. 또 비슷한 말로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의 감탄고토(甘呑苦吐)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정치판에서 자주 쓰이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있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립한 한신이 배신을 당한 뒤 뒤늦게 후회하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고, 하늘을 나는 새가 떨어지면 활을 부러뜨리며, 적국이 망하고 나면 장수들을 내친다더니. 그 말이 맞았구나! 내 그동안 유방을 도와 항우를 무찌르고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건만 이제 천하를 가졌다고 나를 잡아 없애려 하는가!"
본래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월(越)나라 구천을 도와 초를 멸망시킨 재상 범려가 승상인 문종에게 한 말로 전해지는 토사구팽은 그 후 격언(格言)으로 전해오다가 한신이 형장(刑場)의 이슬로 사라질 때 남긴 이야기로 더욱 유명해졌다. 이렇듯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현재를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어김없이 염량세태와 토사구팽의 세태는 여전히 잔존(殘存)하고 있다. 앞으로도 돈과 권력이 있는 곳에는 아마도 어김없이 위 세태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염량세태와 토사구팽이 어떻게 다른 가를 생각해 본다. 힘없는 사람들이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이는 인심(人心)이 좋다 나쁘다는 평가를 떠나 그 고단한 부초와 같은 삶에 왠지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민초(民草)들의 움직이는 인심인들 어찌 양심(良心)이 없으랴.
그러나 어쩌랴.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식솔들의 생존과 안위가 달린 문제이니 덜하고 더하고, 드러나거나 감춰지고의 차이일 뿐 아니랴. 그러니 어찌 이들을 잘못했다고 비난하고 내칠 수 있으랴. 연민심마저 드는 것은 왜일까.
세파(世波)에 기댈 언덕을 찾아, 또는 식솔들의 안위를 찾아 힘 있는 권세나 돈을 좇아 불나방처럼 불에 뛰어들거나 몰려다니는 이들이 그저 안쓰럽고 안타깝기만 하다.
환경과 이해상관에 따라 휘돌리는 민심들을 위해 당당히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과 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염량세태를 넘어서는 맑고 깨끗하고, 인정이 넘치는 사회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기간(社會基幹)을 이끌고 있는 관료나 관리자, 지도자가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 공리(公利)를 저버리거나 부초같은 삶들을 수단이나 도구로 착취하거나 충정심(忠情心)을 일회성 소모품처럼 취급해서는 절대로 그 사회는 안전하거나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정치판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토사구팽. 생각하는 힘이 있는 사람으로 태어난 자라면 토사구팽 당함을 반길 이는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동서고금의 진리는 권세(權勢)의 무상함을 말하고 권력(權力)의 허망함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으며 성현들은 한 치 앞도 못 보는 인간사의 덧없음을 한결같이 노래한다.
지혜로운 범여의 충고를 흘려들은 문종의 자결과 친구 종리매의 피 끓는 충정을 저버리고 사형장에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을 쏟아냈던 한신의 말로가 영화처럼 생생하게 말하고 있질 않는가.
자네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박복연 기자 thanku21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