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법혜 스님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 김법혜 스님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
"군주가 치우침이나 무리 지음이 없으면 정치는 넓고 평평한 길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조선 영조 때 탕평책의 유래이기도 하다. 이리복검(李离伏劍), 사마천의 ‘사기 순리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진(晉)나라 때 사법관을 지낸 이리(李離)의 사법 정신을 소개 한다. 이리는 자신이 십여년 전에 판결한 재판기록을 보다가 무고한 사람에게 사형을 판결하여 그 사람을 죽게 한 사실을 뒤늦게 알아냈다.
이른바 사법부의 실책(失策)에 의하여 본의 아니게 살인을 저지른 셈이었다. 이 일로 이리는 자신을 옥에 가두게 하고, 자신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게 했다. 당시 통치자였던 문공은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것은 이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리 밑에서 실무를 담당한 부하의 잘못이니, 자책하지 말라며 용서했다.
이리는 문공에게 “부서의 장관으로 관리에게 직위를 양보하지도 않았고, 많은 녹봉을 받았으나 부하들에게 이익을 나누어 주지도 않았습니다. 판결을 잘못 내려 사람을 죽여 놓고, 그 죄를 부하들에게 떠넘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문공은 그런 논리라면 너를 사법관으로 기용한 나한테도 죄가 있는 것 아니냐며 이리를 용서했지만 이리는 또 이렇게 말했다.
“사법관에게는 법도가 있습니다. 법을 잘못 적용하면 자신이 그 벌을 받아야 하고, 잘못 판단하여 남을 죽게 했으면 자신도 죽어야 한다고 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라고 했다. 황제께서는 신이 이러한 법을 공정하게 집행할 것으로 믿고 사법관으로 삼으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거짓말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억울한 사람을 죽였으니, 그 죄는 마땅히 사형에 해당합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호위병의 칼에 엎어져 스스로 자결하여 사형을 대신했다. 그래서 이리복검(李离伏劍)이란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법령이란 백성을 선(善)으로 인도하기 위함이고, 형벌이란 사악한 행위를 저지하기 위함이다.
정법과 형벌이 완비되어 있지 않으면 선량한 백성들은 두려워서 스스로 몸조심을 하면서 단속할 것이다. 오롯하게 관리가 직분을 다하고 원칙을 따르는 것 또한 천하를 잘 다스리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리된 자의 행위가 단정하면 사회기강이 결코 문란하지 않다.
"어찌 반드시 엄한 형벌과 법만 내세워서야 되겠는가?” 이 시대 이리와 같은 법관과 관료들이 많았으면 참 좋겠다. 이런 상황에서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능력이 직책에 미치지도 못하는 함량미달인데 가까운 사람이라고 하여 중책을 맡기거나, 반대로 실력과 자질을 충분히 갖추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에 안 든다고 물리치거나 내편이 아니라고 하여 등용치 않는다면 그 나라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하다.
최근 법무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박 내정자가 판사 시절 판결한 ‘삼례 나라슈퍼 사건’이 화제가 되고 있다. 삼례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 할머니(77세)를 살해하고 달아난 3명의 청년을 옥살이 시켰는데, 17년 만에 진범이 나타나면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1심의 배석판사가 박 내정자라는 사실에 주목이 되고 있다. 또 법무부 차관이 된 이용구 차관 역시 차관 취임 직전 변호사 시절에 만취해서 집으로 타고 가던 택시기사를 폭행했는데도 경찰이 내사 종결 처리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특가법)’을 적용하지 않고, 블랙박스 영상 등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단순 폭행 혐의’로 판단하여 처리하여, 검찰이 재수사에 들어갔다. 이처럼 법을 준수하고 모범을 보여줘야 할 법의 수장들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법망을 피해 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사회 지도층 인사라면, 특히 법을 집행하고 다루는 법관이라면 제발 최소한의 체통(體統)이라도 지켰으면 좋겠다. 체면(體面)이 서질 않는데 어찌 아래 사람들에게 명을 내리고, 지휘 통솔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법적 안정성은 사람들이 법을 믿고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는 법이 명확하여야 하고, 쉽게 변경되지 않아야 하며, 실제로 시행되어야 하고, 일반인의 의식에 부합하여야 한다. 그래서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진 나라 사법관 이리(李離)의 사법 정신 자세가 담겨진 이리복검(李离伏劍)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혼자만의 그리움일까.
박복연 기자 thanku21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