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서정적 경관과 성스런 천주교 순교의 역사 공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경관으로 내륙의 제주도라 불리는 신리성지는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시기 가장 큰 신자 공동체를 형성했던 곳이다.
박해시대의 주교관인 다블뤼 주교관이 원래의 위치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에 첫걸음을 내디딘 후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조선에서 활동하였고, 그는 내포지방 천주교 유력자였던 손자선 토마스의 집에 은거하면서 황석두 루카의 도움을 받아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거나 한글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조선 천주교사와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하였고, 이 자료들은 훗날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의 기초가 되었고, 103위 성인을 탄생시키는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또한, 신리는 천주교 탄압기의 가장 중요한 교우촌으로 인식되었고, 조선에서 가장 큰 교우 마을이었으며,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이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의 천주교 전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곳은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시대 비밀교회)로 불리기도 한다.
다블뤼 주교가 신리에서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발달된 삽교천 수계를 통해 중국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었던 점과 내포지방의 문화적 개방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신리성지 내 순교미술관은 로마 지하무덤인 카타콤의 이미지를 형상화하여 건축한 우리나라 최초의 성화미술관으로 다섯 성인의 영정화와 순교기록화를 전시하고 있다,
순교미술관 밖에는 다섯 성인의 삶을 기억하고 기도할 수 있는 작은 경당들이 있는 푸른 잔디밭의 순교역사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1968년 병인박해 순교자들이 시복되자 신리에는 순교복자 기념비가 건립되었고, 1984년 한국 천주교 설립 200주년을 맞아 천주교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리의 중요성도 점차 부각되었다.
이곳은 2008년에 전대 사지 정성지로 지정되어 곳곳에서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맞이 하고 있다. M+
이선민 기자 cmn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