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명섭 충남일보 주필
▲ 임명섭 충남일보 주필 |
최근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 승조원 301명 가운데 247명이 코로나에 집단 감염돼 국내로 긴급히 이송됐다. 적군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부른 ‘패퇴’다. 세계 해전사를 빛낸 이순신 장군과 이달 초 작고한 6·25 영웅 최영섭 함장이 지하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 승조원들의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국내 코로나19 감염병 단일 공간 발생으로는 유례없는 집단 감염이자 군부대 최악의 발생 사례이다.
아직 진실이 다 밝혀지지 않았지만 군 당국의 초기 대응이 너무나 허술해 사태를 키웠다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났다. 해외에 파병된 우리 장병들의 안전을 위해 백신 선제적 접종 필요성이 높았는데 군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이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백신 접종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초 유증상자 발생 이후의 대처는 더욱 한심했다. 청해부대는 최초 유증상자에게 감기약 처방만 했을 뿐이다. 결국 8일 뒤 40여 명의 유증상자가 발생하자 뒤늦게 신속 항체검사를 실시하는 소란을 피웠다.
하지만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신속 항체검사 결과 모두 음성이 나온 것만 믿고 의심 증상자 격리 등 추가 방역 조치도 하지 않았다. 군이 백신 접종을 서둘렀거나 기초적인 방역 매뉴얼만 지켰더라면 확진자가 247명까지 불어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방역 관련 매뉴얼이 있기나 한 건지, 있더라도 제대로 지켰는지 의아한 대목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국방부는 "백신 수송이나 접종 후 부작용에 대한 대처가 어려워 백신 접종이 곤란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국민들이 원하는 답은 진솔한 사실인데 책상 다리 긁는 격과 비슷한 무책임한 변명이였다.
아무리 물자와 인원이 제한되는 해외 파병이라 해도 문무대왕함에서의 집단감염은 막을 수 있거나 감염자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군의 주먹구구식 대처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국방부는 백신을 보내지 못했던 이유로 이상 반응 발생 시 응급상황 대처가 어렵다는 점, 함정 내 백신 보관 기준 충족이 제한이 된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지만 책임 회피성 말이었다.
지휘부가 결심만 했다면 청해부대원들에게 백신을 접종할 수 있었다는 게 군 안팎의 지적이다. 작전 중이던 부대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채 전원 퇴각하는 유례없는 치욕이 대한민국 군대에서 벌어진 셈이 됐다.
작전에서 패배한 결과가 아니라 코로나19 감염 때문이지만, 실책이 겹친 인재였다는 점에서 잘못했다. 군은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집단감염 사태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 특히 왜, 누가 감염 위험이 높은 청해부대에 백신을 수송하지 않기로 결정했는지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혀내야 한다.
그렇지는 않겠으나 요행수를 바라며 허술한 대처를 했다면 더욱 큰 잘못이다. 군과 방역 당국은 두 차례나 청해부대원 백신 접종에 대해 논의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그저 통상적인 의견 교환만 했을 뿐, 후속 조치도, 추가적인 논의도 없었다고 한다.
300명 분 백신 보내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한 장병의 가족은 "병사의 열이 40도까지 오르는 상황에서 해열진통제만 제공했다니 분통이 터졌다"고 말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제약사와 협의해 백신을 우리 함정에 보내는 건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밝힌바 있다. 파병 부대 접종에 대해 질병청과 협의를 가졌다는 국방부 주장과 세부 논의가 없었다는 질병청 주장이 맞서고 있다.
양쪽 중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는지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아울러 군은 함정에 저온 냉장고가 없어 백신을 보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냉동박스에 넣어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정 안 되면 임무교대 시기를 앞당겨 백신을 조기 접종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런 조치 없이 무방비 상태로 장병들을 방치해둔 꼴이 이런 사태로 번지게 했다. 변명할 수 없는 실책이자 인재가 분명하다.
서욱 국방부장관도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는데 부임 이후 벌써 6번째 대국민 사과다. 세계 무역과 한국 상선의 요충지인 아덴만에서 2009년부터 해적 퇴치 작전을 펼쳐온 청해부대는 ‘아덴만 여명’ 작전이 말해주듯 세계 최강 부대로 이름을 날린바 있는데 ‘코로나 지옥’의 불명예를 안게 됐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엄정한 수사로 지휘라인 책임을 밝혀 처벌하고, 국민은 물론 장병과 가족 앞에 진심어린 석고대죄를 해야 한다. 이번 참사는 군에 만연된 기강 해이와 태만, 그리고 무사안일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툭’하면 최전방과 해안 경계망이 뚫리고 군 내부 성추행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고 부인하기 어렵다. 아무튼 감염 장병들이 수송기로 긴급 귀국한 만큼 치료에 만전을 기해주길 바란다.
이선민 기자 cmn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