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윤표 전 교수(연세대학교)
▲ 홍윤표 전 교수(연세대학교) |
저는 주권을 잡았습니다.
“제가 병권을 잡았는데요”
물쑥 이 말을 해 놓고서는 ‘앗차!’하고 후회를 했습니다. 남한에서 흔히 쓰는 말을 북한 학자에게 말했으니 알아들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북한 학자들과 회의를 마치고 같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 맥주가 나와서 술잔에 술을 따르기 위해 제가 맥주병을 잡고 북한 학자의 잔에 따르려 하자 “제가 나이가 적으니 제가 먼저 따라야 한다”며 병을 달라는 말에 저는 남한에서 쓰던 말로 엉겁결에 “제가 병권을 잡았는데요?”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 학자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였는데, 저보나 한 살 아래였지만, 흰머리가 많아 저보다 나이가 많은 줄 알았지만 수인사를 할 때 “저보다 한 살 위이시군요”하고 인사를 해서 저보다 나이가 적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갑자기 제가 잡고 있던 병의 위쪽을 잡더니만 “저는 주권을 잡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병권’을 잡았다고 하는 것은 ‘병’이 ‘병 병’자의 ‘병(甁)’과 ‘군사 병’의 ‘병(兵)’을 합쳐서 ‘병권’(兵權)과 ‘병권’(甁權)을 아울러 말하는 것이었는데, ‘주권’은 ‘술 주’의 ‘주(酒)’와 ‘임금 주’의 ‘주(主)’를 아울러 말하는 것이니, ‘병(甁)’보다는 ‘주(酒)’가, ‘병(兵)’보다는 ‘주(主)’가 더 높을 수밖에 없어서, 저는 어쩔 수없이 병을 북한 학자에게 넘겨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술잔을 잡고 남북의 이 회의가 성공하기를 기원하는 말을 한 후 북한 학자에게 물었습니다.
“그쪽에서도 그런 말을 씁니까?”
북한 학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데 내내 마찬가지입네다”
저는 가끔 남한에서 “저는 주권을 잡았습니다”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 사는 데는 내내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다람쥐 같은 놈
남북한 학자들과 회의를 마치고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남쪽 사정, 북쪽 사정들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사정을 하나라도 더 알아내려고 잡담 아닌 잡담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제가 우연히 “남쪽에는 손금 없는 사람이 많아서 걱정입니다”라고 했더니 북한 학자가 깜짝 놀라면서 “남쪽에서는 그런 병이 유행입니까? 그 병이 무슨 병입니까?”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북한에서도 당연히 ‘손금 없다’는 관용어가 쓰이지 않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쪽에서는 두 손바닥을 비벼대면서 손금이 다 닳아 없어질 정도로 아부하는 사람을 ‘손금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고 했더니 대뜸 “아! 다람쥐 같은 놈?”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의 뜻을 금새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다람쥐가 뒷발로 서서 사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앞발을 비벼대는 모습을 그대로 연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한에서는 ‘손금 없는 놈’을 북한에서는 ‘다람쥐 같은 놈’이라고 표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국어에는 사람을 평가할 때 동물을 비유로 하여 표현하는 특징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해 내었습니다. 가장 많은 비유로 드는 동물이 아마도 ‘개’일 것입니다. ‘개 같은 놈’이라고 하면 대개 ‘하는 짓이 너절하고 더럽고 얄미운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때는 ‘놈’을 붙이지 ‘사람’을 붙이지 않습니다. ‘호랑이 같은 사람’은 ‘성질이 몹시 사납고 무서운 사람’이어서 ‘호랑이 선생님’을 연상하면 금방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돼지 같은 놈’은 ‘몹시 탐욕스럽거나 미련한 사람’을, ‘여우 같은 사람’은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을, ‘쥐새끼 같은 놈’은 ‘매우 교활하고 잔일에 약삭빠른 사람’을, ‘양 같은 사람’은 ‘성질이 매우 온순한 사람’을, ‘소 같은 사람’은 ‘우둔하면서도 부지런한 사람’을, ‘뱀 같은 사람’은 ‘못 믿거나 교활한 사람’을 ‘원숭이 같은 사람’은 ‘흉내를 잘 내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그러고 보니 12간지에 보이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자(쥐), 축(소), 인(범, 호랑이), 묘(토끼), 진(용), 사(뱀), 오(말), 미(양), 신(원숭이), 유(닭), 술(개), 해(돼지)에 해당되는 동물들에 대해서는 몇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람의 특성을 비유하여 표현하는 동물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람쥐 같은 놈‘은 처음 듣는 표현이었습니다.
이렇게 남북의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하다 보면 남한도 북한도 똑같이 사람이 사는 곳이란 강한 유대감을 느끼게 됩니다.
냉면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 갑니까?
최근에 북한의 유명한 냉면집인 ‘옥류관’에서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남한의 재벌 총수들과 같이 앉은 자리에서 “냉면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 갑니까?”
라고 말했다고 해서 북한의 그 고위급 인사가 무례한 발언을 했다고 비난을 퍼붓는 뉴스를 접하고서는 남북의 언어 문제를 연구하고 또 남북의 언어를 통합하려고 노력하여 온 저로서는 깜짝 놀라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론에서는 “냉면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갑니까?”라고 물은 것이 마치 “한 일도 없으면서도 그렇게 태연히 식사를 잘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한 듯이 해석한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쓰는 ‘냉면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갑니까?’는 그런 뜻이 아니라 ‘냉면이 먹을 만합니까?’의 뜻입니다.
우리는 ‘음식이 목으로 넘어간다’로 쓰지만 북한에서는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로 씁니다. 북한어의 ‘목구멍으로 잘 넘어간다’는 ‘맛이 있어서 목구멍으로 잘 넘어간다’, 즉 ‘잘 먹힌다’는 뜻입니다. 맛 없는 음식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갈 리 없지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이 표현을 ‘목으로 잘 넘어간다’로 씁니다. 그래서 ‘목으로 슬슬 잘 넘어간다’는 ‘잘 먹는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것을 ‘목구멍으로 슬슬 잘 넘어간다’고 하면 남한 사람들은 ‘목구멍’이란 단어 때문에 어색하게 되지요. ‘목구멍’이 마치 속어나 비어가 되는 것처럼 느끼지요.
그래서 북한 고위 인사가 “냉면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갑니까?” 대신에 “냉면이 목으로 잘 넘어갑니까?”라고 했다면, 아마도 그 반응은 조금은 달랐을 것입니다.
‘목’과 ‘목구멍’은 다른 의미인데, 동일한 환경에서 같이 쓰이기도 하고 달리 쓰이기도 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전날에, 먹고 싶어하는 목구멍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마지못해 포도청에 잡혀갈 것까지도 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먹고 살아나가기 위하여 차마 하지 못할 일까지도 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비겨 이르는 말)을 ‘목이 포도청’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이 아프다’는 ‘목구멍이 아프다’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예는 많습니다. 남한에서는 ‘이발하다’를 ‘머리 깎는다’라고 하거나 ‘머리 자른다’고 합니다만 이 말은 어휘 그대로 해석하게 되면 큰일 날 일이지요. ‘머리’를 어떻게 자르고 어떻게 깎지요? 그러면 죽지요. 그런데도 “너 머리 깎고(자르고) 와!” 해도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네, 머리 깎고(자르고) 오겠습니다!’라고 답합니다. 머리를 자르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나요? 북한말에서는 ‘머리카락(또는 ’머리털‘) 자르고 머리카락 깎는다’입니다. 그래서 남한 사람이 북한 사람에게 ‘머리 자르고 오라’거나 ‘머리 깎고 오라’고 하면 큰일날 일이지요. 살인자라고 할 걸요.
정확한 표현은 ‘머리카락, 머리털’을 ‘자르고, 깎는다’일 것입니다. “냉면이 목으로 잘 넘어갑니까?”란 표현 대신에 “냉면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갑니까?”처럼 정확한 표현을 쓰는 북한말을 듣고 화를 내는 일부 언론인과 정치인들에게 ‘머리카락 깎고(자르고) 오세요’라고 하면 오히려 ‘머리 깎고(자르고) 오세요’라고 말해야 한다고 충고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선민 기자 cmni@hanmail.net